도서

<세상 끝의 살인> - 아라키 아카네

다람다 2024. 11. 1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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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구마모토에 소행성이 충돌하기까지 약 두 달. 이미 국가는 마비되고 죽거나 도망치거나 빼앗는 자들로 혼란에 휩싸였다. 그런 혼란 속 운전연수를 받겠다고 다자이후 운전학원에 찾아온 23살 하루와 유일하게 운전학원을 지키고 있던 운전강사 이사가와는 어느 날 운전학원 차량 트렁크에서 무참하게 난도질당한 여성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이상한 세계에서 이상한 탐정들과 이상한 범인. 이미 멸망이 예정되었데도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마, 그리고 두 달 후면 끝날 세계에서 굳이 범인을 추적하는 사람들.

 

주인공 하루는 17세 남동생 세이고를 어찌 보면 홀로 부양하고 있는 셈이다. 어머니는 떠나버렸고 아버지는 얼마 전 자살했다. 서로 의지하며 살아야 할 남동생은 자신이 저지른 학교폭력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2년 전부터 히키코모리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하루는 23세답지 않게 어딘가 무감하다. 사이좋은 형제를 평범하게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부모의 부재나 동생의 죄에서는 한 발짝 뒤에서 남의 일을 바라보는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이사가와 강사 또한 범상치 않다. 홀로 학원을 지키는 강사이고 어딘가 범죄에 빠삭하다. 이는 초반에 밝혀지는 사실인데 전직 경찰이었다고 한다. 구세대적 발언을 일삼는 후배(여형사, 여변호사 등)의 말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하나하나 매섭게 정정한다. 경찰을 그만둔 지도 오래지만 남다른 정의감으로 사건을 놓지 못한다. 정의에 대한 집착은 일본의 소년만화나 할리우드의 히어로 캐릭터보다는 일종의 강박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두 사람이 함께 사건을 수사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아포칼립스 장르가 더해진 결과처럼 느껴진다. 작품을 읽는 내내 나는 영화 <돈룩업>과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를 떠올렸는데, <돈룩업>에서는 소행성이 충돌해 멸망한다는 설정과 마지막 장면이, <라스트 오브 어스>는 텅 빈 도시, 누군가는 타인을 착취하거나 존엄을 해치지만 그러나 이런 세상에서도 누군가는 선의로 연대해 나간다는 점이다.

 

이 책은 북스피어의 첩혈쌍녀 시리즈로 출판사는 '서로 말을 나누며 각종 사건에 적극적으로 다가가 해결하는 두 여성 주인공의 활약이 담긴 작품'으로 소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두 여자 주인공이 활약하는 작품에 갈증이 있다면 이 시리즈의 라인업을 훑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현재는 오타니 아키라의 <바바야가의 밤>, 소피아 베넷의 <윈저 노트, 여왕의 비밀 수사 일지>, 그리고 아라키 아카네의 <세상 끝의 살인> 총 세 권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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